오래전 영화관에서 내려간 작품이 다시 관객을 찾기까지

보고 싶었던 영화 상영이 끝나도 어느 순간부터 '재개봉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영화 재개봉은 이전부터 시행되어온 마케팅이지만 지금처럼 이슈가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화양연화>, <패왕별희>, <콜미 바이 유어 네임>, <비트> 등 개봉된 지 20년이 넘은 영화부터 최근 영화들이 왜 앞다투어 재개봉을 하는지 그 목적과 형태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Jun 05, 2024
오래전 영화관에서 내려간 작품이 다시 관객을 찾기까지

영화 재개봉 마케팅의 기원

영화 재개봉 마케팅은 생각보다 오래전 시작했습니다. 1978년 국내에 처음으로 개봉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이 1995년 재개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리마스터링과 같은 퀄리티의 업그레이드가 아닌 단순히 ‘영화를 다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도록’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재개봉은 일시적인 이벤트로 공식적인 통계가 잡히지 않아 흥행 결과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재개봉 마케팅’으로 자리 잡을 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영화 재개봉 마케팅

출처: 20세기 스튜디오

재개봉 마케팅 ‘트렌드’의 시작

지금 영화 재개봉 마케팅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영화는 딱 하나로 꼽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1997년 개봉 작품 <타이타닉>이 2012년 재개봉하면서 3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2013년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재개봉한 새롭게 디지털화된 <러브레터>는 특별한 마케팅 없이 4만 명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2013년에만 <4월 이야기>, <시네마 천국>, <레옹> 등이 재개봉하기도 했죠. 하지만 재개봉 마케팅 트렌드의 시작을 거하게 알린 작품은 2015년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오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05년 최초 개봉했던 해에는 17만 명의 관객에 그쳤던 <이터널 선샤인>을 보기 위해 49만 명이 다시 모였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재개봉 마케팅재개봉 트렌드

출처: 메가박스

왜 우리는 재개봉에 주목할까?

극장 매출 증가

팬데믹 이후 영화산업 전반이 침체기를 맞았습니다. 상영관을 대부분 차지했던 대작과 할리우드 영화들의 개봉이 미뤄지거나 취소되면서 빈 상영관이 늘게 된 것입니다. 또한 OTT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신작들이 극장을 건너 띄고 플랫폼으로 직행하는 케이스도 증가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극장들은 영화 재개봉을 카드로 꺼냈습니다. CGV는 재개봉 특별관을 오픈하기도 했죠. 한국일보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전체 관객 수는 73.7%가 감소했지만 재개봉 영화 관객은 163%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2019년에는 77만 2,315명이었던 재개봉 영화 관객 수가 2020년에는 201만 367명으로 2.6배 늘어났습니다.

향수병과 아쉬움 충족

<러브레터>, <이터널 선샤인>, <타이타닉> 재개봉의 연이은 성공에 극장가는 새로운 타깃층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10대, 20대이던 관객들이 40대가 된 지금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초반 재개봉 작품들 대다수가 로맨스 영화라는 점입니다. 몇 년간 한국 영화계는 액션과 스릴러 중심으로 굴러갔기 때문에 로맨스와 코미디 장르를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이와 같은 재개봉 영화들은 향수병과 현 영화계에 대한 아쉬움을 동시에 충족시켜 줬습니다.

재개봉 마케팅

성공이 있으면 실패도 있는 법!

물론 모든 재개봉 영화들이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재개봉 영화 스코어 상위권에 오른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스코어 1만 명이 되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늘어나는 공급 속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작품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무분별하게 재개봉을 한 덕분에 트렌드에 대한 피로도도 쌓여버렸습니다.

재개봉 작품 흥행 순위 10위안에
한국 영화가 없다

재개봉 영화 시장에서 한국 영화는 약세를 보여왔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만 3만 명을 갓 넘겼을 뿐 흥행 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작품들은 모두 해외 영화입니다. 한국일보가 취재한 CGV 관계자에 따르면 “언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생각하는 한국 영화보다 외화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라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영화 마케팅

단순한 재개봉은 통하지 않아

재개봉작을 선정하는 것에도 전략을 짜는 ‘영화 재개봉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요즘 과연 어떤 방법들로 극장들이 움직이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의 장점을 극대화한 관람 유도

많은 극장들이 영화관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해서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전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최초 개봉 당시에는 부재했던 커다란 스크린과 풍부한 사운드(IMAX, DOLBY, 4DX)를 내세워 이와 적합한 영화들은 재개봉작으로 선정하는 것입니다. 영화관에 와야 하는 이유를 부여하는 마케팅으로 인해 <위대한 쇼맨>은 재개봉 관객 30여만 명을 동원했으며 <인셉션> 또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리마스터링

리마스터링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재개봉의 큰 장점 중 하나일 것입니다. 원작의 화질과 음향 문제를 개선해 원작을 접했던 기존 팬들의 마음을 저격하며, 4K와 같은 고화질의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새로운 관객들에게도 좋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던 작품들에는 <대부>, <아바타>, <화양연화>, <중경삼림>을 들 수 있는데요. 모두 향상된 기술, 화질, 사운드로 원작 이상의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감독판

리마스터링과 달리 감독판은 감독의 스타일로 새로운 장면을 복원시켜 낸 것을 말합니다. 개봉했던 버전과는 또 다른 매력과 감독의 예술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감독판은 편집 기술을 덜어내고 러닝타임은 늘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영화 <미드소마>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감동과 스토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다 적나라한 표현을 더해 재관람객들에게 새로움을 전했습니다. 감독판은 영화에 국한되지 않고 드라마, 예능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무삭제판

무삭제판은 개봉을 위해 편집했던 장면을 되살려 오리지널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점점 감독판과 차이가 희미해져가과 있지만 감독판은 창작자의 예술성, 무삭제판은 상영 등급을 맞추기 위해 제거된 원본 포함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무삭제판도 감독판처럼 원작보다 10~30분 정도 긴 경우가 많으며 예시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덕후들 모여라!

리마스터링, 감독판, 무삭제판 재개봉으로만 그치지 않고 굿즈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규모 팬덤을 갖고 있는 작품을 영화관에서 재개봉할 때 이를 기념하는 굿즈 마케팅을 병행하는 것인데요. 재개봉한 <캐롤>과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은 일반 영화 티켓보다 비싼 가격으로 관람권과 굿즈를 함께 판매해 굿즈 패키지 상영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빠른 매진과 굿즈를 수집하려는 팬들의 n차 관람을 이끌어 냈으며 흥행에 성공했죠. <라라랜드>는 상영마다 오리지널 티켓, 엽서 세트 등을 출시해 소장 욕구를 부추겼습니다.

굿즈 마케팅굿즈 마케팅

감각적인 포스터 리디자인

이제는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로 인해 포스터를 제공하지 않지만 영화를 관람하는 일부 고객에게는 선착순으로 포스터 굿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초 개봉 당시 선보였떤 포스터와 다른, 새롭게 디자인된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하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재개봉 트렌드

출처: NEON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는 개봉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복원된 <올드 보이>를 북미에서 재개봉했습니다. 해당 작품은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며, 미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던 명작 중 하나이죠. 리디자인 포스터는 빨간 배경에 캐릭터와 영화 제목만으로 채워 무게감을 더했습니다.

영화 재개봉 마케팅

출처: CGV

<라라랜드> 또한 재개봉 당시 새롭게 디자인된 포스터를 굿즈로 제공했습니다. 영화의 키 컬러인 비비드한 블루 톤과 피아노 건반을 배경으로 두 주인공이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제7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7관왕,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6관왕을 달성한 뮤직 로맨스라는 점을 잘 표현했습니다.

마치며

영화 재개봉 마케팅에 장점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영화적 경험과 기억의 환기, 풍성한 영화 담론을 유도하며 관객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니까 말이죠. 재개봉 트렌드가 이벤트성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지기 위해서는 일부 대형 제작사의 스크린 독과점, 독립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예술 영화의 소외 등과 관련된 툴을 조속히 만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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